영화관에서 봤다는 거, 여자주인공이 예뻤다는 거, 그리고 남자주인공이 찌질했다는 거 말고는 거의 기억나는 게 없는 영화. 개봉관에서 봤으므로 때는 1989년이었으리라. 하지만 그밖에는 어디서 봤는지, 누구랑 봤는지, 왜 봤는지 등등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제목에 걸맞게 그후로도 오랫동안 기억되는데, 그 이유는 장나라 때문이다. 장나라만 보면 이 영화가 연상작용에 의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생각난다. 이 영화가 나왔을 때 꼬마였던, 그래서 이 영화에 단역으로도 나온 적이 없는 장나라가 왜 뜬금없이 이 자리에 끼냐고? 이 영화에 조연으로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이 나오기 때문이다. 주호성은 여기서 폭력배 역할을 맡았는데 거의 대사도 없었고 잠깐 얼굴을 비치는 정도. 하지만 극 전개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기도 했다. 아무튼 이 영화 이후로 내가 주호성만 보면 이를 갈 정도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는데, 장나라가 연예계에 데뷔할 때 자연스럽게 그 아빠도 함께 소개되어서 다시 이 사람 얼굴을 보게 된 거다. 저 사람 얼굴이 낯설지 않은데 어디서 봤더라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 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.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TV에서 장나라만 보면 이어서 주호성, 그리고 이 영화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기억의 저 끝에서 줄줄이 따라 올라오는 게 아닌가. 그때부터 장나라 → 주호성 → 그후로도 오랫동안이 거의 공식처럼 연상될 뿐만 아니라, 여기에 살이 붙어서 정보석이나 김영철까지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곤 했다. 영화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으면서 말이다. 장나라는 무슨 죄냐. 본인이 어렸을 때 아빠가 악역으로 출연한 영화가 무어 그리 대단한 굴레라고… 21세기에 때아닌 연좌제도 아니고 이 무슨 아름답지 못한 기억의 고리인지. 미안하다 장나라. // 그런데 오늘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뭐지? 아 맞다. 터미네이터 생각하다가 또 이쪽으로 샜구나. 가만 보니 내가 병이구만. 아 쑥스러워라.